Mulan Soundtrack 뮬란

동양의 신비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은 디즈니의 36번째 선택, 남다른 기획과 다채로운 음악으로 포진된 <뮬란 Mulan> 사운드트랙

올해 디즈니 신화의 중심지가 된 곳은 광활한 중국대륙이다. 연로한 아버지 대신 군에 입대해 조국을 구한 어린 소녀 뮬란의 이야기인 만큼, 짜릿한 모험, 호쾌한 전투장면, 가슴 적시는 감동은 기정 사실이고, 거기다 디즈니 특유의 애틋한 로맨스와 폭소를 자아내는 유머가 절묘하게 스며들었으니 감동과 웃음의 섞어찌개를 선호하는 디즈니로서는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중국의 잔다르크라 불리는 뮬란의 모험담은 효와 충의 덕목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 전통에 맞서는 진취적인 여성상이라는 점에서 현대성을 획득한다. "역경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꽃보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건 없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한떨기 아름답고도 강인한 꽃으로 자아를 찾아가는 뮬란의 행보에, 단순하면서도 시적인 아름다움을 불러놓는 시각미술과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의 활약, 그리고 다채로운 음악이 좋은 동반자가 되준다. 이렇듯 익숙하면서도 늘 새로운 디즈니의 감동과 동양의 신비와의 유쾌한 만남이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그러면 이 <뮬란>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펴보자. 우선 <뮬란>은 디즈니사가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첨단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설립한 후 처음으로 제작된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만큼 <뮬란>은 디즈니사에 있어서 새로운 도약의 초석인 셈이다.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17년동안 몸과 마음을 바친 배리 쿡(Barry Cook)과 <라이온 킹>의 품바, <알라딘>의 이아고와 같은 캐릭터의 수석 애니메이터로 일한 8년 경력의 토니 밴크로프트(Tony Bancroft)가 연출을 맡았고, <조이 럭 클럽>, <원 나잇 스탠드>에서 매력적인 연기 호흡을 뿜어냈던 중국계 배우 밍나 웬(Ming-Na Wen)은 물론, 천방지축 코미디언인 에디 머피(Eddie Murphy)의 목소리 연기가 한몫 단단히 하고 있으니 볼거리, 들을거리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음악은 어떨까? <인어공주>로부터 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역사적 부활의 숨은 공로자이며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포카혼타스>로 아카데미 음악상과 주제가상 8개 트로피를 거머쥐며 <헤라클레스>까지 디즈니의 음악적 분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앨런 멘켄(Alan Menken)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엔?

우선 첫 번째로 오리지널 송 작곡은 '83년 Break My Side를 히트시켰던 다재다능한 싱이 송라이터이자 키보드 주자로 최근엔 얼터너티브 록밴드인 노 다웃(No Doubt)의 플래티넘 앨범 "Tragic Kingdom"을 제작, 프로듀서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매튜 와일더(Matthew Wilder)가 맡았고, 노랫말은 지난해 <헤라클레스>로 디즈니와 첫 인연을 맺었던 브로드웨이의 베테랑 작사가 데이빗 지펠(David Zippel)이 연임했다. 그리고 영화 속을 휘감는 오리지널 스코어는 '77년 <오멘>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이래 <에일리언>, <폴터가이스트>, <그렘린> 시리즈, <적과의 동침>, <원초적 본능>처럼 공포와 스릴로 자욱한 화면에서, 그리고 <스타트랙>, <3차원의 세계>, <로보캅>, <토탈리콜>같은 SF에서 탁월한 재능을 펼쳤던 작곡가 제리 골드스미스(Jerry Goldsmith)가 맡았다. 최근 거장의 역량이 쇠진했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었던 그의 음악인생도 <L.A. 컨피덴셜>로 어느 정도 변화국면을 맞이한 것 같다. 이후의 작업인 <뮬란>에서 어느덧 일흔이 되가는 나이가 무색하게 동양적인 색감으로 흥건한 열정적이고도 웅장한 선율을 펼쳐내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최고 뮤지션들의 참여가 눈부시다. 그러면서 신구의 조화로움이 돋보인다. 우선 가장 눈에 띄이는 이름은 엔드 타이틀 'True To Your Heart'에서 화음을 맞춘 98 Degrees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아닐까 싶다. 올해 음악인생 25주년을 맞은 노장 스티비 원더는 싱어 송라이터로, 프로듀서로, 편곡자로, 시인으로 지금까지 21번의 그래미와 <우먼 인 레드>의 주제곡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로 오스카를 수상한, 설명이 필요없는 뮤지션이다. 정교하고 빼어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한 98˚는, 사람의 체온을 화씨로 표기한 그룹 이름답게 체온이 느껴지는 따뜻하고 정감넘치는 멜로디로 팝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백인남성 4인조 그룹이다. 올해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을 발표하고 수록곡 'Invisible Man'이 사랑을 받았지만, 아직 부를 노래가 더 많은 신인이다. 그런 그들이 대선배인 스티비 원더와 함께 경쾌하고 신명나는 흑백의 하모니를 들려준다. (But Ginu says : True To Your Heart는 디즈니 사상 최악의 엔드타이틀이었다!!!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와 완전히 따로 노는 댄스곡이라니... 당연히 주제곡은 Reflection이어야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코어만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을 뿐 주제가상에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이어 주목해야 할 가수가 뮬란의 내면을 나직하게 읊어낸 타이틀곡 'Reflection'을 소화해낸 크리스티나 아귈레라(Christina Aguilera)이다. 줄리 앤드류스와 휘트니 휴스턴에게서 음악적 영향을 받은만큼 열정적이고 깊은 심도의 보컬을 뽐내는 이 당찬 십대 여가수는, 내년에 데뷔앨범을 준비하는만큼 아직은 파릇한 가능성만 엿보일 뿐이다. 하지만 18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원숙한 음역조절을 펼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에선 이미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신성. 디즈니채널의 프로그램 'Micky Mouse Club'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노래실력을 선보였지만, 이렇게 영화 사운드트랙의 테마곡을 직접 소화해내기는 처음이다. 그런만큼 <뮬란>이 크리스티나의 앞길에 밝은 청신호가 되어주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특히 이 곡 'Reflection'은 뮬란의 노래를 담당하고 있는 레아 살롱가(Lea Salonga)의 목소리에 담겨 영화 속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는데, 레아 살롱가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히로인이자 <알라딘>에서 자스민 공주의 노래를 불러 우리에겐 낯익은 필리핀계 가수. 게다가 뮬란이 중매장이를 만나기 전 몸단장을 할 때 마을 아낙네들과 함께한 곡 'Honor To Us All'과 샹의 군대가 행군을 할 때 사랑하고픈 여자의 모습을 그리며 부르던 노래인 'A Girl Worth Fighting For'에서 야오 목소리의 토니상 수상 경력의 하비 피어스타인, 치푸역의 제임스 홍, 치엔포 목소리의 제리 톤도와 함께 익살맞게 목소리를 맞추고 있으니, 이 노래들 역시 주목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가수가 뮬란과의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자 용감한 대장 샹의 노래 'I'll Make A Man Out Of You'를 불러제낀 도니 오스몬드(Donny Osmond)인데, 오스몬드가의 7번째 아들이자 패밀리그룹 The Osmonds의 일원으로 70년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목소리인지라 반갑기 그지없다. 이렇게 98˚, 크리스티나 아귈레라 같은 신인과 스티비 원더, 도니 오스몬드의 연륜이 더해진 풍성한 화음의 만찬인 셈이다.

이 <뮬란> 사운드트랙의 가장 큰 미덕은 한국 뮤지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재작년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솔리드가 주제곡 'Someday'를 한국어로 커버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요즘 '나의 하루'라는 곡으로 주목받는 신인가수 박정현이 'Reflection'의 한국어 버전인 '내 안의 나를'을 소화해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운드트랙이 지금까지 발매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앨범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우리 노래가 담겨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 곡이 바로 다재다능한 싱어 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인 김현철이 작사하고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등 발라드 작곡가 프로듀서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신재홍이 작곡, 편곡, 프로듀스 작업을 맡아, 박정현이 그 특유의 유려한 보컬을 뽐낸 '영원까지 기억되도록'이다. 특히 이 곡은 'Eternal Memory'라는 영어 버전으로도 만들어져 아시아에서 발매되는 <뮬란>의 사운드트랙에 실릴 예정이니,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화음악 작업에 특별하고도 남다른 물꼬를 튼 셈이다. 게다가 'Reflection'을 두고 벌이는 네 목소리의 향연, 즉 레아 살롱가, 크리스티나 아귈레라, 박정현, 그리고 타이완 최고의 인기가수 코코 리(Coco Lee)의 노래를 비교하는 맛은 이 사운드트랙이 제공해줄 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98년 6월, 권 영 / 그의 글은 너무 느끼해서... 최대한 보정하려고 노력한다. -_-+